은유의 종말

내가 맥을 처음 접했을 때가 대략 89년쯤인데, 맥을 처음 키면, Macintosh Guide라는 애플리케이션이 실행되었다. 그리고 기본적인 개념을 가르쳐 주었는데,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이 마우스 사용의 개념을 익히는 것이었다. 3가지 개념을 가르치는데, Point, Click, Drag & Drop 이다. 이것을 실습하기 위해서, 어항이 있는 책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Point 를 통해서 마우스를 가져다 대면 반응을 하고, Click 을 통해서 선택을 하고, Drag & Drop 으로 하나의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이동을 하여 무언가 액션을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여기서 파일, 폴더, 휴지통, 데스크탑으로 비유를 확장하고, Point, Click, Drag & Drop 의 사용자 액션을 통해서 사용자가 컴퓨터에 원하는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형식이었다. 책상위에 있는 문서를 Drag & Drop 으로 책상 서랍의 폴더에 옮겨 넣는 연습을 한다. 완벽한 은유였다. 그리고 이 은유는 생각보다 넓게 확장되었다.

그리고, Macintosh Human Interface Guideline 을 보게 되었는데, 3가지를 가르쳤다. 직관성, 일관성, 허용성. 직관성은 은유를 통해서 배우지 않아도 맥을 사용할 수 있었고, 일관성은 한번 알게 된 내용은 항상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매번 배우지 않고도 인지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허용성은 사용자는 맘 편하게, 직관적으로 사용해 볼 수 있고, 혹시 잘못 추측했더라도 다시 번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서 더더욱 빠르게 배울 수 있게 된다. 나는 이 철학에 탄복하였고, 지금껏 살아오는 내내, 내가 무언가를 만든다고 할때 생각의 기본 틀로 사용하였다. (물론 남이 만든 것을 무시하는 도구로 더 많이 사용하였다)

그리고, iPhone 이 나왔다.


iPhone 을 처음 소개한 스티브잡스는, 음악 기능중 Cover Flow를 소개할 때, “You can touch your music” 이라고 설명 하였다. 음악을 만질 수 있어요. 음악이 추상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손끝으로 만지고 조작하고 느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 그것이 iPhone 의 큰 매력이었다.

그리고, iPhone Human Interface Guideline 을 보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왔다. UI 를 만들 때에는 만질 수 있는 대상처럼 설계해야 한다. Direct Manipulation 라는 말이 나온다. 토글 버튼은 오른쪽 왼쪽으로 밀면 딸깍딸깍 바뀌고, 슬라이드는 죽 댕기면 따라 온다. 페이지는 밀면 넘어가고… 그렇다. 터치 인터페이스라는 것은 실제 실생활의 사물 같은 것은 화면상에 넣어놓으면 그걸 진짜 만지는 것처럼 사용하면 된다. 얼마나 직관적인가. 배울 필요가 없다.

스큐몰피즘이란 말이 나왔다. iOS 는 만질 수 있는 객체를 UI 화 하는 것의 극한으로 스큐몰피즘을 선택하였다. 최대한 실생활에 가까운 것을 화면어 넣어야지. 정말 똑같이 생기면 더더욱 실감날 것이야. 디테일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할 정도로 가죽질감을 넣었고, 금속재질은 빛에 반사하는 느낌도 주었다.

iOS7 이 선보였다. 스큐몰피즘을 이끌었던, 스캇 포스톨이 쫒겨나고, 그 자리를 조니아이브가 꿰찾다. 마치 혁명에 승리한 권력자가 과거를 부정해 버리듯, 조니아이브가 선보인 iOS7 은 철저히 스큐몰피즘을 걷어 내었다. 최신 유행이라고 하는 플랫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그냥 세속적으로 보자면, 조니아이브는 참 치졸해 보인다.

은유는 어디로 갔을까? 은유를 통한 직관성은 어떻게 하나?

몇해전부터인가 작은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저장”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플로피 디스크,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은유적으로 사용되어 왔었는데, 세월이 한참 지나다 보니, 이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아마도 플로피(적어도 위 아이콘과 같은 3.5인치)를 앞서 도입한 것도 애플이었지만, 가장 먼저 퇴출시킨 것도 애플이었다. 아마 1998년 반투명 iMac 이 세상에 선보였을 즈음이다. 그 이후에 PC 를 처음 접한 사람은 플로피디스크에 저장해 본 경험이 없다. 15살쯤 처음 컴퓨터를 접한다면, 지금 30살 이전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직관적이지 않은 은유가 되는 것이다.

좀 더 나가보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아나로그 객체보다 디지털 객체를 더 먼저 접하게 된다. 진짜 라디오 버튼으로 라디오를 조작했던 사람들은 5,60대가 되었고, 진짜 라디오 버튼 보다 화면상의 라디오 버튼을 처음 접한 사람이 더 많은 시대가 되었다. 직관성을 위한 은유가 아닌 용어 자체의 어원으로써 의미 밖게 남지 않는다. 아날로그 객체를 디지털에서 형상화 하는 것은 옛날 사람의 고집인 것 뿐인 시대가 되었다. 그냥 과거의 향수 정도? 앞으로 점점더 많아지는 디지털로 시작하는 세대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화면에서 누를 수 있는 것은, 실생활에서 진짜 눌렀던 버튼들 모양을 가진 것 만은 아니다.

우리는 근래 20년동안 웹이란 것에 익숙해 져 왔다. 웹은 하이퍼텍스트로 시작했다. 화면상에서 밑줄이 쳐 있는 글자는 누르면, 관련된 다른 문서로 이동하였다. 여기서 발전해서 글과 그림이 섞여 있는 문서에서 무언가 다른 정보로 이동시킬 것 같은 텍스트 혹은 이미지 조각을 눌러보면, 더 많은 정보로 연결해 주었다. 우리는 웹을 은유의 도움이 아닌 정보의 문맥으로 웹을 사용해 왔다.

웹은 점점 발전하여 이메일을 작성해 보내는 용도로 쉽게 사용할 수 있었고, 쇼핑을 하기에도 충분하였다. 데스크탑 메타포어 같은 은유는 필요없이 문맥속의 정보만으로 충분히 사용성이 좋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iOS 가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없어진 것이 파일과 폴더의 은유였다. 더이상 파일, 폴더에 대한 은유가 사라진 컴퓨팅 환경이었다. 옛날부터 컴퓨터를 사용한 사람은 혼란스러워 하지만, 머리를 깨끗히 비우고 보면, 더 쉬워진 것은 사실이다. 이제 iOS 7 이 되면서 아날로그에 대한 은유도 사라지려 한다. 옛날 사람들은 다시 또 당황하지만, 미래에서 본다면 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된 마당에 구닥다리 옛날 물건들을 최신 기기에 멋지게 옮겨 놓고 편하다라는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정보의 문맥이 가장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되는 것인가? 물론 일관성과 허용성은 아직 유효하다. 은유가 아닌 문맥.

애플은 iTunes의 아이콘에서 CD 이미지를 제거했다. 더이상 CD가 음악을 상징하지 않는다. 아니 iTunes가 그렇게 만들었다.

좀 더 고민해 보자.

두려워 하지 말고.

꼭 은유가 없다고 직관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은유의 종말”에 대한 12개의 댓글

  1. 애플은 파일을 ‘저장’ 한다는 행위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실제로 개별 파일을 ‘직접’ 건드리는 일을 없애려고 몇년 전 부터 계속 시도 해 오고 있구요.

  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변화와 그 가능성에 마음을 열지 않는 경험은 어느 선을 넘어서면 고정관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저도 종종 들곤 하더군요.
    잘 정리해 주신 글을 읽다 보니 그런 생각들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3. 스큐몰피즘이 사라지는것을 너무나도 아쉬워하는 1인입니다. 근데 수용님의 글을 읽고 생각을 좀 달리하게 되었네요.
    직관성이 많이 떨어졌다고…UI에 설명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실망했었는데..
    (여전이 어느정도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덕분에 시야가 좀 넓어진 느낌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4. 와 글 정말 잘 쓰시네요!
    iOS7의 디자인이 완전히 바뀐 것에 대한 반응이 양분되는 상황에서
    한쪽 말을 들을 때마다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했었는데
    이 포스트를 읽고 나니 플랫UI의 기저에 깔린 의미를 알게 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