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적 소비자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소비자 불매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적 투표행위로 개개인의 의견이 현실 정치에 반영되는 일이 점점 더 (아니 사실 이전부터 안되어 왔지만 우리는 될 수 있으리라 믿어왔을지도) 가능성이 희박해 진다. 언론은 정부의 통제도 국민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기업은 소수의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힘이 막강해 졌다.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 모두 소수의 강자에게 힘이 집중되고 있다. 이 와중에 다수의 국민의 뜻이 반영될 리 없다. 투표를 통해 심판하고 투표로서 발언한다 하지만, 이러한 힘의 불균형 앞에서 형식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맥없이 무너지는가를 지금 계속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이제 마지막 남은 소비라는 행동을 의견표현의 수단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 행동이라는 것이 매우 나쁜 것이라 매일 세뇌 받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 정치적이란 단어는 인간관계, 인맥을 통해서 승부를 조작하려는 의도로 해석이 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상대를 정치적이라고 비난을 하는데, 이때의 뜻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대중을 기망하려는 행동을 흔히 일컫는다. 정치인들이 대중을 향해서 정치적 행동을 하지 말라고 교시한다. 정치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행동을 뜻하니깐.

내가 가진 상식에 따르면, 정치란 내가 생각하는 정의, 내가 생각하는 합리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정치학 교과서는 전혀 다르게 설명할지도…) 선거를 통해서 지지하는 대리인을 선출하는 방법도 한가지 이고, 직접적인 발언을 통하는 것은 또다른 방법이다. 그리고 경제는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우리가 말하는 자본주의, 공산주의 모두 경제 체제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그렇다면 경제의 가장 기본 행동인 소비가 정치적인 의식과 분리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오늘 문득 궁금해 졌다. “이념적 소비”란 가능한 것인가? 아니 더 정확히는 우리는 이념적 소비가 허락된 것인가?

Lab80이란 회사가 있는데, 이전에 방문했을 때, 이 회사에서 개발하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자금을 펀드를 통해서 재테크를 한다. 펀드에는 다양한 기업에 대한 투자를 묶어 포트폴리오로 구성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 만든 서비스는 내가 원치 않는 회사에 내 자금이 투자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에, 나의 성향을 알려주면 (예를 들어, 동물실험을 반대한다 던지 등등) 그에 알맞는 펀드를 추천해 주는 서비스라고 하였다.

오늘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이념적 소비를 위해서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역시 “소비”를 하는 것이다. 그 소비로서 나는 오늘 “ideoconsumer.org”, “ideoconsumer.com” 도메인을 구입했다. 내가 행동이 빠른 사람이라면 당장 이 도메인으로 내가 생각하는 웹사이트를 멋지게 꾸몄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해서, 이 도메인은 언제까지 방치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사고, 이렇게 묻어둔 도메인이 몇 개 더 있다)

기업이 있고, 상품이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기업에 바라는 정치,사회,문화적인 “조건”이 있다. 소비자는 자신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 한가지 더. 만일 자신이 원하는 상품이 자신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이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대안이 되는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까지 알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이념적 소비자.
소비라는 행동이 기업을 넘어, 언론, 정치에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그래야 하는지, 그러면 안되는지는 더 복잡한 문제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미워하는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피할 권리는 있지 않을까?

은유의 종말

내가 맥을 처음 접했을 때가 대략 89년쯤인데, 맥을 처음 키면, Macintosh Guide라는 애플리케이션이 실행되었다. 그리고 기본적인 개념을 가르쳐 주었는데,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이 마우스 사용의 개념을 익히는 것이었다. 3가지 개념을 가르치는데, Point, Click, Drag & Drop 이다. 이것을 실습하기 위해서, 어항이 있는 책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Point 를 통해서 마우스를 가져다 대면 반응을 하고, Click 을 통해서 선택을 하고, Drag & Drop 으로 하나의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이동을 하여 무언가 액션을 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여기서 파일, 폴더, 휴지통, 데스크탑으로 비유를 확장하고, Point, Click, Drag & Drop 의 사용자 액션을 통해서 사용자가 컴퓨터에 원하는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형식이었다. 책상위에 있는 문서를 Drag & Drop 으로 책상 서랍의 폴더에 옮겨 넣는 연습을 한다. 완벽한 은유였다. 그리고 이 은유는 생각보다 넓게 확장되었다.

그리고, Macintosh Human Interface Guideline 을 보게 되었는데, 3가지를 가르쳤다. 직관성, 일관성,  허용성. 직관성은 은유를 통해서 배우지 않아도 맥을 사용할 수 있었고, 일관성은 한번 알게 된 내용은 항상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매번 배우지 않고도 인지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허용성은  사용자는 맘 편하게, 직관적으로 사용해 볼 수 있고, 혹시 잘못 추측했더라도 다시 번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서 더더욱 빠르게 배울 수 있게 된다. 나는 이 철학에 탄복하였고, 지금껏 살아오는 내내, 내가 무언가를 만든다고 할때 생각의 기본 틀로 사용하였다. (물론 남이 만든 것을 무시하는 도구로 더 많이 사용하였다)

그리고, iPhone 이 나왔다.

iPhone 을 처음 소개한 스티브잡스는, 음악 기능중 Cover Flow를 소개할 때, “You can touch your music” 이라고 설명 하였다. 음악을 만질 수 있어요. 음악이 추상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손끝으로 만지고 조작하고 느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 그것이 iPhone 의 큰 매력이었다.

그리고, iPhone Human Interface Guideline 을 보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왔다. UI 를 만들 때에는 만질 수 있는 대상처럼 설계해야 한다. Direct Manipulation 라는 말이 나온다. 토글 버튼은 오른쪽 왼쪽으로 밀면 딸깍딸깍 바뀌고, 슬라이드는 죽 댕기면 따라 온다. 페이지는 밀면 넘어가고… 그렇다. 터치 인터페이스라는 것은 실제 실생활의 사물 같은 것은 화면상에 넣어놓으면 그걸 진짜 만지는 것처럼 사용하면 된다. 얼마나 직관적인가. 배울 필요가 없다.

스큐몰피즘이란 말이 나왔다. iOS 는 만질 수 있는 객체를 UI 화 하는 것의 극한으로 스큐몰피즘을 선택하였다. 최대한 실생활에 가까운 것을 화면어 넣어야지. 정말 똑같이 생기면 더더욱 실감날 것이야. 디테일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할 정도로 가죽질감을 넣었고, 금속재질은 빛에 반사하는 느낌도 주었다.

iOS7 이 선보였다. 스큐몰피즘을 이끌었던, 스캇 포스톨이 쫒겨나고, 그 자리를 조니아이브가 꿰찾다. 마치 혁명에 승리한 권력자가 과거를 부정해 버리듯, 조니아이브가 선보인 iOS7 은 철저히 스큐몰피즘을 걷어 내었다. 최신 유행이라고 하는 플랫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그냥 세속적으로 보자면, 조니아이브는 참 치졸해 보인다.

은유는 어디로 갔을까? 은유를 통한 직관성은 어떻게 하나?

몇해전부터인가 작은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저장”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플로피 디스크,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은유적으로 사용되어 왔었는데, 세월이 한참 지나다 보니, 이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아마도 플로피(적어도 위 아이콘과 같은 3.5인치)를 앞서 도입한 것도 애플이었지만, 가장 먼저 퇴출시킨 것도 애플이었다. 아마 1998년 반투명 iMac 이 세상에 선보였을 즈음이다. 그 이후에 PC 를 처음 접한 사람은 플로피디스크에 저장해 본 경험이 없다. 15살쯤 처음 컴퓨터를 접한다면, 지금 30살 이전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직관적이지 않은 은유가 되는 것이다.

좀 더 나가보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아나로그 객체보다 디지털 객체를 더 먼저 접하게 된다. 진짜 라디오 버튼으로 라디오를 조작했던 사람들은 5,60대가 되었고, 진짜 라디오 버튼 보다 화면상의 라디오 버튼을 처음 접한 사람이 더 많은 시대가 되었다. 직관성을 위한 은유가 아닌 용어 자체의 어원으로써 의미 밖게 남지 않는다. 아날로그 객체를 디지털에서 형상화 하는 것은 옛날 사람의 고집인 것 뿐인 시대가 되었다. 그냥 과거의 향수 정도? 앞으로 점점더 많아지는 디지털로 시작하는 세대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화면에서 누를 수 있는 것은, 실생활에서 진짜 눌렀던 버튼들 모양을 가진 것 만은 아니다.

우리는 근래 20년동안 웹이란 것에 익숙해 져 왔다. 웹은 하이퍼텍스트로 시작했다. 화면상에서 밑줄이 쳐 있는 글자는 누르면, 관련된 다른 문서로 이동하였다. 여기서 발전해서 글과 그림이 섞여 있는 문서에서 무언가 다른 정보로 이동시킬 것 같은 텍스트 혹은 이미지 조각을 눌러보면, 더 많은 정보로 연결해 주었다. 우리는 웹을 은유의 도움이 아닌 정보의 문맥으로 웹을 사용해 왔다.

웹은 점점 발전하여 이메일을 작성해 보내는 용도로 쉽게 사용할 수 있었고, 쇼핑을 하기에도 충분하였다. 데스크탑 메타포어 같은 은유는 필요없이 문맥속의 정보만으로 충분히 사용성이 좋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iOS 가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없어진 것이 파일과 폴더의 은유였다. 더이상 파일, 폴더에 대한 은유가 사라진 컴퓨팅 환경이었다. 옛날부터 컴퓨터를 사용한 사람은 혼란스러워 하지만, 머리를 깨끗히 비우고 보면, 더 쉬워진 것은 사실이다. 이제 iOS 7 이 되면서 아날로그에 대한 은유도 사라지려 한다. 옛날 사람들은 다시 또 당황하지만, 미래에서 본다면 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된 마당에 구닥다리 옛날 물건들을 최신 기기에 멋지게 옮겨 놓고 편하다라는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정보의 문맥이 가장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되는 것인가? 물론 일관성과 허용성은 아직 유효하다. 은유가 아닌 문맥.

애플은 iTunes의 아이콘에서 CD 이미지를 제거했다. 더이상 CD가 음악을 상징하지 않는다. 아니 iTunes가 그렇게 만들었다.

좀 더 고민해 보자.

두려워 하지 말고.

꼭 은유가 없다고 직관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신뢰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신용사회라는 것은 고도로 효율화된 사회의 모습이다. 신용이 바탕이 되지 않는 사회는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예를들어, 만일 위조지폐가 손쉽게 통용되는, 즉 바꿔말해, 손님이 내는 지폐를 신뢰할 수 없는 사회라면 모든 거래에서 위폐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것이고, 이는 엄청난 비용을 뜻한다. 신용카드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사람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거래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거래에 따르는 비용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마도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상태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상태, 그 중간 어디쯤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후진국보다는 효율적이고, 선진국보다는 비효율적인 상태가 아닐까 한다. 선진국이 선진국인 이유는 모든 비용이 고비용일지라도 이 신뢰로 인한 비용절감으로 인해 후진국보다 더 경쟁력 있게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얼마전 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길을 가다 “도나 기에 관심이 있으세요?”라고 묻는 행동의 가장 큰 폐악은, 길을 가다 만난 낯선 사람들이 말을 걸어올 때, 나에게는 그 낯선 사람을 도와 줄려는 선의를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그 선의를 완전히 악용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는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무대응하게 되고, 이 사회 전체가 마음을 닫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단지 낯선 사람에 대한 선의 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나는 이들에게 선한 관계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이 선의를 완전히 악용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를 신뢰로 대하는 것은 크게 어리석은 것이라고 배우게 된다.

신뢰가 쌓여 나가면, 그와 함께 그 신뢰를 좀먹는 벌레가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그 벌레들은 나에게 계속 일깨울 것이다. 신뢰는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작년쯤이었을까. 골목길 사거리에서 자동차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사거리에서 봉고와 교차로에서 대기상태에 있었는데, 봉고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는데, 좀처럼 지나갈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사거리를 지나는데, 봉고가 내 차의 옆을 박아버렸다. 봉고 기사가 내려서, 이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서는 수동기어 운전이 처음인데, 급하게 차를 대신 빼주려다 사고를 냈다고 했다. 나는 보험처리를 약속 받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어쩌겠나 하는 마음에) 하지만, 메리츠 화재(상대방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다. 다짜고짜 내게 쌍욕을 하기 시작했고, 일방적인 나의 과실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메리츠 사고 처리 담당자가 욕을 한 이유는 나를 흥분하게끔 하고, 지치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고, 일방적인 나의 과실을 주장하는 것은 합의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의 보험사(현대해상)에서는 내가 연락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자기네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하였다. 결국은 그쪽이 원한 것은 내 차 렌트비(150만원 정도)를 안 받는 조건을 합의 받고 싶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당시 메리츠 화재 사고 처리 담당자에게 말했었다. “나도 어쩌면 큰 범위에서 당신의 고객인데, 즉 잠재적인 미래의 고객인데,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나요?” 하지만, 그쪽의 반응은 쿨 했다. 자기는 자기 일 처리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그런데 그때 나는 나의 우문 속에서 답을 찾았다.  다음번 자동차 보험사를 찾을 때, 이러한 경험이 바탕이 될까? 혹시 나는 자동차 보험 최저가를 비교해서 단돈 천원이라도 저렴한 보험사와 계약할 것은 아닐까? 보험사가 보여준 광의적 의미의 신뢰가 고객의 마음 속에서 얼마나 살아남아서 어떤 보답으로 돌아올까? 결론은 별개의 일이 아닐까라는 것이었다.

메리츠 화재 보험 담당자가 옳았다. 그의 행동은 메리츠 화재에 아무런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단지 회사를 위해 150만원을 벌어 주었다. 어짜피 보험 계약은 별도의 마케팅, 영업의 힘으로, 아니 최저가 입찰의 힘으로 이루어 지는 것. 보험사와 나의 관계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은 하나 뿐이다. 나 스스로 누군가 나에게 신뢰를 보여 준다면, 나는 신뢰로 화답했는가? 나는 누군가와 신뢰의 끈으로 엮여 있는가, 그때 그때 이익으로만 연결되어 있는가?


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 본다. 나는 나에게 신뢰를 주는 이에게 얼마나 신뢰로 보답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 모두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는 없다. 너무 이상적이다. 하지만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선의를 가지고 있고, 신뢰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신뢰의 약점을 파고들어 악용하고, 신뢰의 기반을 온전히 무너뜨리려는 이들, 이들에 대처하는 나의 답은, 모두를 불신의 눈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에 대한 답을 더 크게 주는 것 뿐이다.

혁신은 짜장면집에 있다

중국집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켰다. 서비스로 군만두가 왔는데,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만두는 이미 식었고, 눅눅했다. 스티로폼 그릇에 성의없이 랩으로 감싸있었다. 포장도 뜯어볼 필요가 없었다. 서비스 군만두는 맛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군만두가 맛없기도 쉽지가 않다. 만두라는 것이 워낙 대중적인 인기를 가진 메뉴이고, 거기에 튀긴다는 것은 왠만해서는 맛없기가 힘든 극강의 조리법이다. 이 둘이 합쳐진 군만두는 정말 어지간해선 맛없게 만들기가 어려운 메뉴이다. 이런 군만두가 버림받고 있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관심을 가지는 것이 소프트웨어이고, 최신 트렌드를 끊임없이 따라간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혁신을 매일 이야기 한다. 더 혁신적인 것은 무엇인가? 애플이 매번 새롭게 내놓는 신기술은 이미 식상하다. 걸어다니며 화상통화를 하는 것도 모자라 더 놀라운 것을 기대한다. 손안에 모든 컴퓨팅 기능이 다 들어간 것 정도는 당연하다. 핸드폰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는 부족한지, 새로운 무언가를 또 찾는다.

사람들을 놀래켜야지.

우와.

더더더.

우린 인간의 감성까지도 이해하는 핸드폰을 만들려 하면서, 왜 따끈하고 바삭한 군만두는 배달하지 못할까?

혁신은 짜장면집에 있다.

열정

한참 오래전, 오랫동안 잘 알던 분이랑 밤새 논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꽤 격하게 논쟁을 하여, 감정까지 상해버린 일이었습니다. 내용은 단순하게도 회사의 주인이 누구냐는 이야기 였습니다. 나는 아주 드라이하게 “회사는 원론적으로 주주가 주인입니다. 사원이 주인이 아니죠. 주인이 위험을 감수하여 투자하고 그 책임을 집니다. 사원이 주인이라는 건, 행여 공무원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것과 같은 생각입니다.” 나는 나도 공돌이이지만, 상식을 조금 가진 공돌이가, 상식이 없는 공돌이에게 훈계하듯이 종일 떠들어 댔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입장이 달랐습니다. 오히려 나에게 실망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인줄 몰랐다면서… 나는 그럴수록 그 사람이 잘 알 수 있도록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럴수록 이야기는 점점 더 깊은 암흑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때는 몰랐었습니다. 그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못했었습니다. 당시는, 그분도 나도 사회초년생이었습니다. 개발을 좋아했고 열정에 가득 찼었고, 취업을 했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열정을 제품 개발에 쏟아 부었는데, 그분이 받은 대접은 열심히 개발은 하되, 의견 따위는 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시키는 것만 하지 왜 말이 많냐는 것이었죠. 그 때 그분이 가진 감정은 마치 씨받이 같은 것이겠죠. 내가 배아파 낳았지만, 내가 키울 수 없는 내 자식 같은 것이겠죠. 그분은 그런 혼란을 겪고 있었던 중이었을 겁니다.

마치 열정이 말라 타 들어가는 것을 온몸으로 아파하며 신음하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이후로 비슷한 이유로 열정이 꺼져가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봐 왔습니다. 때론 내가 열정을 꺼트리는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때마다 매우 안타깝게 지켜봤습니다. 옆에서 조언도 하고, 응원도 하고, 비아냥대기도 하고, 참견도 했습니다. 하지만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열정이 없는 사람들은 열정이 생기지 않는 수만가지 이유를 이야기 합니다. 열정이 생겼다가 식어버린 사람도 열정이 사라지게 된 수 없이 많은 이유를 말해 줍니다. 하지만, 열정에 가득찬 사람들을 보면, 시련이란 한낯 술자리 이야기꺼리 밖에 안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그렇듯, 장애가 크면 클 수록, 사랑의 깊이가 더 깊어지듯, 열정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장애물에 쉽게 마음이 접어지면 그거 진짜 사랑이 아니듯이, 열정도 그런것 같습니다.

나는 열정을 가진 것이 천부적 재능을 가진 것보다 더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정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 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말이죠. 열정을 가진 사람은 심심하지 않습니다. “뭐 재미있는 일 없니?” 라고 묻는 사람은 열정이 없는 사람입니다. 무언가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 심심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늘 바쁘고, 평생을 다해도 모자랄 할 일 들이 쌓여 있습니다. 후회가 없습니다. 마치 사랑의 열병을 앓은 것처럼 엄청난 감정의 수고로움은 있을 지라도 후회따위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열정이란 한 인생에 주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 생각 됩니다. 오랜기간 꺼지지 않는 열정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요즘 드는 또 다른 생각이 열정이란 만들어 내는 것도, 지켜내는 것도 아닌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마치 천부적 재능이, 말 그대로 주어진 것이듯 ,열정도 주어지는 것인 것 같습니다. 뭔가 매우 비관적이고 운명론적 사고관이지만, 요즘 드는 생각이 그렇습니다. 열정을 가져 보아라, 열정이 꺼지지 않도록 잘 지켜라는 조언은 천부적 재능을 받아 보아라, 왜 예쁘게 태어나지 않았니 라고 하는 것과 같은 부질없는 이야기 인 것 같습니다.

나의 하루가 심심하지 않을 만큼 내게 열정이 있다면, 그것으로 정말 감사한 일이고, 열정으로 활활 불타는 사람을 만난다면 절세 미인과 함께하는 것만큼 즐겁고 영광스러운 일인것 같습니다. 열정이란 화장실에서 힘주면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미인의 얼굴에서 자연발광하는 광채와 같은 것 같습니다.

요즘 드는 생각이 그렇습니다.

대항마들은 왜 레티나를 미리 내지 못했을까?

3월 8일 예상대로 iPad 3 가 발표 되었고, 예상 밖으로 이것은 The New iPad 라 불렸다. “새로운 iPad” 의 특징은 5가지로 정리되는데, 그중 하나만 꼽으라면 당연 레티나 디스플레이이다. 그리고, 이 레티나의 적용은 사실 iPad 2 가 나올때부터 점쳐 오던 것이었다. 더 정확히는 iPhone 4 가 레티나를 적용하면서, iPad 에 적용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궁금한게 있다. 대체 왜 대항마들은 이렇게 오래전(대략 1년반전)부터 예측되어 오던 레티나 태블릿을 왜 먼저 내놓지 못했을까? 먼저 선빵을 날리며 선두마로 나갈 수 있었는데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나 나름대로의 추측을 해 보자면,

첫째, 애플은 이미 힘으로도 압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잘 알려진 바대로, 애플이 만든다기 보다는, LGD, 삼성, 샤프 이 세회사가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가격은 대략 70불로 추정한다고 한다. 작년 한해만 대략 4천8백만대의 iPad 를 팔았다. 아무리 보수적으로 봐도, 설마 올해 5천만대 못팔까? 애플은 최소 5천만대 이상 판매계획을 세웠을 것이고, 이들 디스플레이 회사에 선주문을 넣었을 것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대략 3조 7천억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세 회사가 균등히 나눠도 1조 이상의 매출이 간다.

하지만, 상황은 어떤가? 대략의 들려지는 바로는, 이제 막 새로운 공정을 세우고, 새롭게 시작하는 단계라 쉽지만은 않다. 올해 5천만대 공급도 버겁다는 이야기가 들려 온다. 이러한데, 애플은 어떻게 했을까. LG 디스플레이에 1조원 선수금 넣어주고 물량 확보 했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경쟁자들은 이 상황에서 과연 물량 확보가 가능할까? 5천만대는 커녕 1백만도도 자신 없는데, 누가 과연 지를 수 있을까? 그럼 반대로 LGD 는 어떨까? 선수금 꽂아주고, 5천만대 물량확보 해 주는데, 다른데서 1백만대만 빼 달라면 과연 줄 수 있을까? (양산 라인이 안정화 이후라면 모를까)

애플이 최초의 레티나 태블릿을 출시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힘에 의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둘째, 레티나에 맞는 OS 는 누가 만들어 주나?

어찌어찌 해서,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확보 했다고 치자. 그럼 레티나에 OS(아마도 안드로이드) 최적화는 누가 시켜야 하나? 그보다 먼저, A5X 칩셋 처럼, 4배향상된 GPU 도 받쳐줘야 한다. 이거 어디서 구하나? 그리고 디바이스 드라이버 최적화 부터, 웹 브라우저까지 모두 재정비에 들어가야 한다. 성능적인 문제는 오히려 간단하다. UI 위젯 콤포넌트 부터, 전반적인 모든 앱 라인에 이르기까지, 레티나가 빛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글이 해줄까? 아니면 디바이스 제작업체마다 해야 할까? 이것 참 애매하다. 그리고 구글이 나선다 해도, 앱개발사들에게 레티나 최적화를 선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여러모로 난감하다. 아직 태블릿 환경도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레티나 최적화라는 주제는 앞서나가도 너무 앞서 나간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파편화로 어깨가 무거운 개발사들은 어떻게 위로해 줄까?

누군가 제조사 내에서 레티나를 적용하자고 주창했을때, 네가 나서서 해 보라고 하면, 아마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을까?

세째, 레티나가 좋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있었을까?

만약, 그 누군가가, 애플과 같이 디스플레이 업체에 배팅도 하고, 그에 맞는 OS 및 환경 셋업을 위해 천문학 적인 투자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을때, 그렇다면, 레티나를 촛점으로 마케팅 해서, 팔아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전에, 내부적 보고라인 안에서라도 레티나로 인상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껏 투자한 것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을까?

애플은 레티나를 빛나게 할 PC 급 소프트웨어, iWork, iLife 로 시작해서, 최근 발표한 iBooks 까지, 그리고 결정적 한방. 레티나에 최적화 된 인피니티 블레이드까지 준비할 수 있었다.

내가 만약 대항마의 입장이라면 어떤쪽으로 마음이 기울까? 레티나 디스플레이 생산이 안정화 되고, 물량이 확보되기까지 기다렸을 테고, 구글이 애플의 레티나 iPad 성공에 자극을 받아서 움직여 주기를 기다릴 테고, 그리고 애플의 레티나 iPad 를 보고 아이디어와 힌트를 얻고 비집고 들어갈 곳을 찾고 난 다음, 그리고 움직이지 않을까? 미리 움직여 득을 볼 것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닌가. 매우 당연한 결론에 이르렀지만, 이렇게 곰곰히 생각해 보지 않았을 때에는 매우 궁금한 것이었었다.

또 한가지,

내가 레티나 iPad 에 대해서 매우 흥분을 하고,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는 평가를 하고 다니니, 가끔 궁금해 하며 묻는 분도 계신다. 단지 해상도 하나 좋아 진 것 뿐인데, 뭘 그리 호들갑을 떠나요? 애플도 속내를 들어내기를 iPad 가 Post-PC 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사람들은 과거 PC 에서 했던 많은 것들을, PC 가 아닌 iPad 에서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PC 에 익숙하지 않을 수록, PC 비전문가 일수록 이 발견의 속도가 더 빠르고, 더 빨리 적응을 한다. 레티나는 이 Post-PC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아마도 내 생각에는) 마지막 장애물을 넘어가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과거를 돌아보면, PC 시대는 사실 애플컴퓨터의 탄생 만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IBM PC 의 탄생도 아니다. 애플컴퓨터는 여전히 컴퓨터 광들의 취미에 불과했다. 아마도 VisiCalc의 등장으로, PC 가 모두에게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물론 더 크게는 IBM PC의 LOTUS 1-2-3 일 것이다.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iPad 가 보여 준 가능성을 조용히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예를 들어, iBooks 2를 통해서, 전자책으로서 가능성만을 보여주었다면, 레티나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전자책으로 쓰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러 기업에서도 iPad 사용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아예 PC 를 사용하지 않고, iPad 만으로 업무가 가능한 직군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이러한 PC 없이 iPad 만 사용하는 것을 놀랍지 않은 일로 만들 것으로 보인다. LOTUS 1-2-3 가 PC 를 보통사람의 집과 사무실 책상위에 두는 것을 놀랍지 않은 일로 만든 것처럼.

나는 거의 1년반을 레티나 iPad 를 기다려 오면서, 꼭 애플이 아니더라도 레티나만 장착해 준다면 누구라도 충성을 맹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소원을 맨 먼저 들어 준 것이, 애플이라는 점이 참 묘하다. 나는 이 레티나와 함께 애플은 올해도 또한번 도약한다에 배팅을 한번 걸어본다.

아이디어 부족

회사를 운영한다고 하면, 곧잘 묻는다. “당신의 비젼은 무엇입니까?” 회사가 작은 규모일수록 이 질문은 “당신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무엇입니까?”와 동의어가 되어 버린다. 사실 이런 질문에는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한다.

가족, 친지, 친구들을 만나면, 곧 잘 이야기가 나온다. “나한테 좋은 (앱, 예전엔 웹)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리고 쌍팔년도 아이디어를 듣다 행여 부정적 의견이라도 살짝 드러내면, 당장 나는 식견 없는 사람으로 비난 받는다.

학교, 연구소, 기업에 계신 분을 만나면 늘 묻는다. “뭐 쌈빡한 아이디어 없나?” 예전에는 애플 이야기를 하면, 항상 새롭고 신선하긴 하지만 별로 와 닿지는 않는다고 하였지만, 요즘은 진부하고 당연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네 들이 아직 잘 모르는, 미국의 신규 스타트업 이야기를 하면, 다시금 그때의 애플 취급을 한다.

요즘은 아이디어라고 하면 마치 헐리우드 영화의 하일라이트 장면처럼 턱이 쭉 빠지게 하는 그런 것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흔히 말해서 애플이 애들 다 버려놨다는 뜻이다. 이런 것이 불편했지, 이런 식으로도 되었으면 좋겠지… 이런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우와 멋져 보여. 우와 최첨단인데. 이런걸 느끼게 해 줘야 아이디어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도 대게 그렇지만, 나도 식당에 가면 늘 이런 소리를 한다. “아! 내가 하면 정말 잘할텐데” 정말 내가 이 가게를 대박 가게로 만들 수 있는 대박 아이디어가 넘쳐 흐른다.

나는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피치 못할 경우, 축구 같은 것을 사람들과 같이 볼 때가 있다. 그럴때면 항상 누군가는, 선수가 헛발질 할 때마다, “아후, 내가 눈감고 해도 저것보단 잘하겠다” 이런식의 탄식을 한다.

식당에서의 좋은 사용자 경험(UX)란 무엇일까? 좋은 맛은 기본이고, 깨끗한 청결, 우아한 인테리어, 친절한 서비스, 그리고 예상보다 저렴한 가격 이 모든 것이 어우려져야 식당을 기분 좋게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다음에 이 식당을 또 찾으려면, 식사후 나오는 독특하고 상큼한 디져트 서비스! 이런것이 기억에 남게 하는 포인트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제대로 된 재료비 지출하려면, 인건비도 맞출 수 없는 구조이고, 인건비도 안나오는데, 인테리어는 생각도 할 수 없다.

축구선수는 또 어떨까? 골문 앞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리는 선수의 판단력이 쇼파에 앉아 맥주 치킨을 먹으며, 입체적으로 중계하는 TV를 보면서 내리는 판단과 같을 수 있을까? 아마도 선수는 답답한 호흡과 기진맥진해 가는 다리의 근육, 그리고 혼미한 정신상태에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듯 축구 선수의 기막힌 찬스는 최악의 조건에서 마지막 한 스텝으로 결정 나는 것이다.

그렇다 체력이다. 아이디어가 문제가 아니다.

실리콘 밸리의 조언자는 항상 충고한다. “아이디어는 값싼 것이다” 아이디어를 지나치게 부정하지 않았나 하는 반발이 들기도 하지만, 아이디어(요즘 흔히들 말하는 그 아이디어)란 좋은 식당에서 맛 좋은 음식을 친절한 서비스와 우아한 분위기 속에서 즐기고 난 뒤 마지막에 나오는 독특하고 상큼한 디저트 같은 것이다. 중요는 하지만, 본체를 대신 할 수 있는 것이고, 실패한 본체를 살려줄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애플의 WWDC(World Wide Developer Conference) 에 참석했을때, 애플이 개발자들에게 자신의 성공 비법을 공개했었다. 항상 시작은 “문제의 인식”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가장 단순하고 우아한 해법을 찾고, 그것이 만족으러울때까지 반복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Wow Effect”, 우리말로 하면 “우와 효과”를 더한다고 한다. 그것이 애플의 비법이다. (물론 애플은 Wow Effect 를 넣는 것이 좋다고 해 준 조언이다.) 오랫동안 애플의 비법을 봐왔고, 그리고 그것을 잘 배우고, 잘 수행한 많은 사례를 봐왔다. 우리끼리는 그런 사례를 “애플 스럽다”라고 말한다. 이 삼단계를 정확히 밟은 것이다. 하지만, 이 삼단계를 거치지 않고, Wow Effect 에 매몰된 경우를 많이 목격한다. 나는 이런 경우 성미급한 “대항마스럽다”라고 말한다.

영화도 아무리 최첨단 기술을 다 쏟아 부어도, 결국 망할땐 그 이유를 “스토리 부족”으로 든다.

“본질”을 이야기하면, 마치 현실세계에서 한발 벗어난 형이상학적인 것을 추구하는 철없는 철학자 대우를 받지만, 언제나 성공한 것에는 “본질”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늘 확인한다. 또 하나, 애플의 수사법 중에 좋아하는 표현이 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본질에 관한 애플의 진지한 자세를 엿볼 수 있고, 그들의 설명은 그것을 충분히 공감하게 만든다.

본질에 관한 진지한 생각. 그것을 풀어낼 때까지 반복할 수 있는 끈기 있는 체력. 그리고 마지막에 살짝 더해주는 위트있는 아이디어. 항상 무엇을 하든 이 순서를 생각한다. 쉽지는 않지만…

Time Machine 잘 쓰고 있나요?

이번에 MacAppStore 에서 iBooks Author 를 설치하다가 깜짝 놀랬다. LaunchPad가 뜨면서 설치가 되는 것이다. 아차. 한동안 잊고 지냈던 LaunchPad. 나름 Mac OS X Lion 은 10개의 주요 신기능중 하나인데, 다르게 말하면 Lion 을 써야 하는 10가지 이유중 하나인데, 전혀 쓸 일이 없는 것이다.

Mac OS X Lion 의 주요 기능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MacAppStore 애플 신제품 발표하면 그거 받을려고 씀. 기존 앱들과의 헷갈리는 정책으로 쓰면 쓸 수록 꼬임
Launch Pad 한번도 쓴 적 없음
Full Screen App 써 볼려고 노력은 해 봤지만 …
Auto-Save , Versions 한번도 쓴 적 없음. 다시 말하면, 한번도 과거 버젼을 되살려 본 적 없음
Resume 강제 리부팅후 동작하는 것은 봤지만, 도움이 됐지는지는…
Mail 원래 안 씀
Multi Touch Control 열심히 노력한 끝에 잘 씀
Mission Control 매우 만족
AirDrop 쓸 일이 없음. 한번 써 볼려고 했으나, 매끄럽게 사용하기 힘듬
iCloud 포토스트림 좋은데, 그마나 잘 쓰기도 힘듬
Find My Mac 이거 쓸 일 있는지 정말 궁금함

잘 보면, Mission Control 말고는, 정작 Lion 의 신기능을 쓸 일이 없다. 물론, MacAppStore, LaunchPad, Full Screen App, iCloud 등은 현재 큰 가치를 못 보여줘도, 앞으로의 청사진을 보여줬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Vaporware 에 가깝다. 애플이 다음 퍼즐 조각을 보여주면, 더 잘 이해가 갈 지도 모르겠다.

Mac OS X 10.6 Snow Leopard 의 경우 신기능은 하나도 추가하지 않았지만, 모두 새롭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가격도 공짜로 했으니 넘어가고, Mac OS X 10.5 Leopard 의 신기능은 아래와 같다.

Back to My Mac 쓸 일 없음
Boot Camp 쓸 일 없음
Stack 없어도 그만
Quick Look 잘 쓰긴 하지만, 느려서 불만
Spaces 잘 쓰긴 했지만, OS 에서 안줘도 되느 기능
Time Machine 좋아 보였는데, 막상 쓸 일은 없음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드는 생각이, Mac OS X 10.4 Tiger 이전까지는 정말 혁신을 이어 나갔던 것 같았다. Mac OS X 을 사용하는 것이 그 외 다른 환경과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Expose, Spotlight, iChat 등등. 하지만 그 이후로는 발표때에는 환호했던것 같지만, 막상 내 생활에 도움이 되는 영역까지는 오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에 iOS 의 Siri 를 보면서도 그런 것을 느꼈다. 발표는 멋있지만, 과연 잘 쓸까?

애플은 지금까지 내게 정말 실질적 가치를 제공하고, 사용하기 쉬운 그런 느낌이었다. 적어도 애플에서 만든 것은 내가 별 노력없이 그 가치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요즘은 아닌 것 같다. 애플이 제공하는 기능이 어떤게 있는지도 모두 알고 있기 힘들고, 그것의 가치를 활용하기 까지도 적지 않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가장 슬픈 일은, 애플이 다음에 또 어떤 새로운 가치를 줄까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다.

도구의 과잉

도구의 과잉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하기 전
최선의 도구를 선택해야 하는데,

보통 이것이
도구의 빈곤의 시대에
단순한 도구의 반복적 사용으로 인한
능숙함이 가져다 준 효율
이 효율성 보다 더 높아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최적의 도구의 선택, 도구 사용법 익히기의 반복 과정중 매번 단순 도구로의 회귀의 유혹을 받는다. 이러한 유혹의 극복이 가장 큰 난제가 아닌가 싶다.

 

컨텐츠는 스스로 퍼진다

망하는 제품의 흔한 개발 과정 포스트가 적지 않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아마도 살아오면서 내가 쓴 글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큰 관심이 그 관심 자체로도 참 감사한 일이지만, 여러가지 자료와 생각할 단초를 준 것도 감사한 일이다.

기술적 분석

일단, 이 글에 대한 조회수는 70,425 번이다. 현재까지 딱 14일이 지났다. 아래는 유입량에 대한 분석이다.

 

대략  6일동안 전체의 80%의 트래픽이 유입되었다. 그만큼 전파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놀라운 점. 전체 트래픽의 3% 가 iPad, 26% 가 iPhone, 16% 가 안드로이드 디바이스 였다. 모두 합하면, 45%가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트래픽이 유입되었다. 최근 테마를 Yoko 로 설정해서, Responsive Web 이 적용되어, 데스크탑 웹 뿐 아니라 모바일 화면에서도 최적으로 보였던 것이 매우 빛을 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놀라운 사실. Referer 즉, 어느 사이트에서 보고 넘어왔는지 분석해 봤는데, 무려, 38%가 페이스북에서 링크를 타고 왔다. 정말 전혀 예상치 못한 수치였다. 아쉽게도 트위터는 분석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URL 단축 서비스 사이트를 통해서 오고, 여러 서비스가 있기 때문에 추정이 안되나, 대략 페이스북 보다는 많은 것으로 추정한다. 다음에서 들어온 경우 1%, 네이버에서 들어온 경우 1%, 그렇다면 대부분의 유입 경로가 SNS 라 결론을 내려도 무난하다.

가히 SNS 와 모바일의 시대이다. 아니 어쩌면 둘은 떼내서 생각 할 수 없고, 하나로 생각해야 할 듯 싶다.

감성적 분석

“컨텐츠는 스스로 퍼진다.”

김어준 총수가 한 말이다. 잘 만든 컨텐츠는 어떻게 알릴까 고민하지 않아도, 알아서 퍼진다는 것이다. 좀 뻔뻔한 이야기 이지만, 내가 이번에 쓴 글이 조금 좋은 컨텐츠라 가정한다면,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블로그는 rss 구독수도 거의 없고, 내 트위터의 팔러워는 300명 초반대(현재는 이번 글 때문에 150명이 증가했다) 였기 때문에, 그리 큰 영향력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고 난 후 취한 행동은 – 정학히는 자동으로 – 블로그에 글이 등록되고, 내 트위터를 통해서 트윗이 올라간 것이 다였다. 나는 그 외에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6일만에 5만명 이상에게 널리 읽혀 졌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거꾸로 7만명에게 내 글을 읽게 만들려 했다면 얼마의 홍보비가 필요했을까?

앱을 만들 때, 컨텐츠를 만들 때, 항상 생각한다. 이걸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리지? 그런 고민은 쓸 데 없다는 것을 알았다. 컨텐츠는 스스로 퍼진다. 나는 잘 만들기만 하면 된다. 좋은 게 파 묻힐 일은 없다는 것이다.

“컨텐츠 유통은 포털이 아닌 SNS”

바야흐로, 컨텐츠의 유통 경로에서 포털이 설 자리가 없다. 그 자리에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들어 온 것 같다. 사람들은 포털이 추천한 글을 읽지 않고, 주변 지인(혹은 네트상의 지인)이 추천한 글을 읽는다. 한때 국내 포털이 메이저 언론으로 등극할 태세였으나, 방향은 원하는 대로 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뻔한 사실을 다시 한번 강하게 알게 되는 때가 있다. 나는 이걸 깨닫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번도 역시 뻔히 아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