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신용사회라는 것은 고도로 효율화된 사회의 모습이다. 신용이 바탕이 되지 않는 사회는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예를들어, 만일 위조지폐가 손쉽게 통용되는, 즉 바꿔말해, 손님이 내는 지폐를 신뢰할 수 없는 사회라면 모든 거래에서 위폐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것이고, 이는 엄청난 비용을 뜻한다. 신용카드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사람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거래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거래에 따르는 비용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마도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상태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상태, 그 중간 어디쯤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후진국보다는 효율적이고, 선진국보다는 비효율적인 상태가 아닐까 한다. 선진국이 선진국인 이유는 모든 비용이 고비용일지라도 이 신뢰로 인한 비용절감으로 인해 후진국보다 더 경쟁력 있게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얼마전 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길을 가다 “도나 기에 관심이 있으세요?”라고 묻는 행동의 가장 큰 폐악은, 길을 가다 만난 낯선 사람들이 말을 걸어올 때, 나에게는 그 낯선 사람을 도와 줄려는 선의를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그 선의를 완전히 악용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는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무대응하게 되고, 이 사회 전체가 마음을 닫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단지 낯선 사람에 대한 선의 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나는 이들에게 선한 관계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이 선의를 완전히 악용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를 신뢰로 대하는 것은 크게 어리석은 것이라고 배우게 된다.
신뢰가 쌓여 나가면, 그와 함께 그 신뢰를 좀먹는 벌레가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그 벌레들은 나에게 계속 일깨울 것이다. 신뢰는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작년쯤이었을까. 골목길 사거리에서 자동차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사거리에서 봉고와 교차로에서 대기상태에 있었는데, 봉고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는데, 좀처럼 지나갈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사거리를 지나는데, 봉고가 내 차의 옆을 박아버렸다. 봉고 기사가 내려서, 이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서는 수동기어 운전이 처음인데, 급하게 차를 대신 빼주려다 사고를 냈다고 했다. 나는 보험처리를 약속 받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어쩌겠나 하는 마음에) 하지만, 메리츠 화재(상대방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다. 다짜고짜 내게 쌍욕을 하기 시작했고, 일방적인 나의 과실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메리츠 사고 처리 담당자가 욕을 한 이유는 나를 흥분하게끔 하고, 지치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고, 일방적인 나의 과실을 주장하는 것은 합의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의 보험사(현대해상)에서는 내가 연락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자기네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하였다. 결국은 그쪽이 원한 것은 내 차 렌트비(150만원 정도)를 안 받는 조건을 합의 받고 싶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당시 메리츠 화재 사고 처리 담당자에게 말했었다. “나도 어쩌면 큰 범위에서 당신의 고객인데, 즉 잠재적인 미래의 고객인데,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나요?” 하지만, 그쪽의 반응은 쿨 했다. 자기는 자기 일 처리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그런데 그때 나는 나의 우문 속에서 답을 찾았다.  다음번 자동차 보험사를 찾을 때, 이러한 경험이 바탕이 될까? 혹시 나는 자동차 보험 최저가를 비교해서 단돈 천원이라도 저렴한 보험사와 계약할 것은 아닐까? 보험사가 보여준 광의적 의미의 신뢰가 고객의 마음 속에서 얼마나 살아남아서 어떤 보답으로 돌아올까? 결론은 별개의 일이 아닐까라는 것이었다.
메리츠 화재 보험 담당자가 옳았다. 그의 행동은 메리츠 화재에 아무런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단지 회사를 위해 150만원을 벌어 주었다. 어짜피 보험 계약은 별도의 마케팅, 영업의 힘으로, 아니 최저가 입찰의 힘으로 이루어 지는 것. 보험사와 나의 관계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은 하나 뿐이다. 나 스스로 누군가 나에게 신뢰를 보여 준다면, 나는 신뢰로 화답했는가? 나는 누군가와 신뢰의 끈으로 엮여 있는가, 그때 그때 이익으로만 연결되어 있는가?


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 본다. 나는 나에게 신뢰를 주는 이에게 얼마나 신뢰로 보답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 모두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는 없다. 너무 이상적이다. 하지만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선의를 가지고 있고, 신뢰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신뢰의 약점을 파고들어 악용하고, 신뢰의 기반을 온전히 무너뜨리려는 이들, 이들에 대처하는 나의 답은, 모두를 불신의 눈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에 대한 답을 더 크게 주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