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는 성공과 실패를 보는 해상도가 높다.
주변을 살펴보면, 아주 잘난 사람도 있고, 아주 못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이들의 아주 큰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모두들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번에 우연한 계기로 아주 이해하기 쉬운 개념으로 다시 알게 된 사항이 생겼다.
못난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실패라는 것을 가늠하는 기준점이 불분명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아니 실패의 기준점이 점점 연장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 무슨 말이냐면, 아Q정전에서 보여준 인간형 처럼, 실패라는 것을 단정하기 전에, 변명을 위해서 결론을 내리기를 잠시 멈춘다는 것이다. 오늘의 실패는 아직 실패가 아니다. 내일 가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아직 실패가 아니다. 그래서 오늘의 실패는 아직 판단 유보 이런 식이다. 인생 한방 역전과 같은 희미한 희망같은 것이 꼭 있다. 물론 그 사이의 인과관계를 전혀 없고, 단지 막연한 희망만이 존재한다.
그에 반해, 잘난 사람들을 보면, 실패를 판단하는 시점이 매우 짧다. 오늘 하루는 성공인지 실패인지, 오늘 아침에 하기로 한 것은 성공인지 실패인지 늘 확인한다. 그래서, 못난 사람에 비해서 잘난 사람은 훨씬 많은 실패를 한다. 항상 실패를 달고 살고, 매일, 매시간 반성을 한다. 어제보다 실패를 줄이기 위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늘 자기 주입을 한다.
나는 이것을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은 실패를 판별하는 “해상도”가 다르다고 이름 붙였다. 잘난 사람은 성공과 실패를 따지는 것이 마치 레티나 디스플레이처럼 고해상도로 판별하지만, 못난 사람들은 날파리의 눈으로 보는 세상처럼 희미하게 판별한다. 그래서 못난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다. 지금까지는 딱히 뭐 잘된것이 없지만, 앞으로 잘 될 수 있으니, 포괄해서 판단해 달라 이렇게 계속해서 자기 변명만 하게 된다. 아Q정전처럼 마지막 순간까지.